치매 어머니, 요양병원에 안보내고..서울대 교수의 307일

치매 어머니, 요양병원에 안보내고..서울대 교수의 307일

[아무튼, 주말] [김성윤 기자의 공복] 서울대 박희병 교수, 307일 간병의 기록

“밥 문나?” “춥다. 목도리 하고 다니라.” “니가 내 때문에 많이 에비따(여위었다).”

지팡이가 필요 없을 만큼 꼿꼿하고 총기가 넘치던 어머니는 88세가 된 2017년 10월 말기 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 저하증 판정을 받았다. 병원은 “허겁지겁 응급실을 찾느니 지금부터 좋은 요양병원을 알아봐 그리로 모시라”고 권했다. 가족은 고민 끝에 의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다른 선택지를 알아보던 가족은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말기 암처럼 회복 불가능한 병을 앓는 환자에게 연명 치료를 하지 않되 고통을 완화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체계다. 어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애 마지막 307일을 살다가 2019년 10월 24일 구순(九旬)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박희병(64)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의 간병 일기.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어머니 고(故) 임갑연씨를 1년여간 돌보며 들은 어머니의 말을 기록하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서문에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나는 죽어가는 어머니가 남긴 말들에 특히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얼핏 전후 맥락이 없고 의미 없는 말처럼 보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이 말들이 모두 의미가 없는 말들은 아니며 단지 의미가 해독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지 박 교수의 사적인 기록만은 아니다.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우리 모두의 질문이 있다. ‘주체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어떤 지원과 선택지를 제공해야 하는가’.

박 교수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뒤뜰에서 만났다. 그는 “부모님이 삼각지 실버타운으로 이사한 2017년 사월 초파일, 박물관 1층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돌고 2층 불교관 금동반가사유상을 참배했다”며 “삼각지 부근에는 절이 없는 듯해 나온 궁여지책이었다”며 웃었다. 박 교수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책을 낸 건 어머니를 위해 시작한 기록이지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사진 촬영은 극구 사양했다.

‘마카 가나?’ 엄마가 사투리를 다시 썼다

―어머니의 말을 기록하고 해석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인지 저하증은 조현증과 비슷해요. 늘 그런 게 아니라 텀(기간)을 두고 발작해요. 그러면 딴사람이 돼 버려요.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들으면서 소리를 질러요. 갈수록 그 빈도가 잦아지더라고요. 발작을 하면 너무 힘듭니다. 본인이 제일 힘들어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요. 넋이 나간 상태로 몇 시간 있다가 한두 마디씩 하세요. ‘미안하다’ ‘행복했다’ ‘당신(남편)한테 너무 감사하다’. 같이 살면서 어머니에게 들어본 적이 없었던, 범상찮은 말들이었어요. 어머니 자신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계시더라고요. 이런 말들이 강렬하게 가슴에 와닿고 머리에 기억됐어요. 집에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어머니 말들을 생각했고, 며칠 후부터 적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간단하게 적다가 갈수록 어머니의 말들과 상황을 자세하게 스케치해놨어요. 2018년 10월 10일 며칠 후부터일 거예요.”

―어머니가 아프면서 눈에 띄게 사투리를 사용하셨다고요.

“어머니는 경남 함안 가야면 말산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가야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48년간 살면서 말이 적잖이 순화되고 표준화됐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사투리를 별로 쓰지 않았죠. 그런데 특히 병원에 계시면서 사투리를 사용했어요. 놀랍게도 오랫동안 못 들어본 단어들을 들으니 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옛 기억과 시공간이 다시 복원되는 거죠.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에는 ‘마카 가나?’라는 어머니의 말이 나오더라고요.

“마카는 ‘모두’ ‘전부’라는 뜻입니다. 이 경상도 말은 어린 시절 듣고 못 들었으니 수십년 동안 잊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이 단어를 말하자마자 이 오래된, 그동안 완전히 잊어버렸던 이 단어의 뜻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통해 잊어버린 시간과 기억 속으로, 그 시절 속으로 단박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갑자기 쫙 연결됐어요. 참선하는 수행자의 돈오(頓悟·단번에 깨달음을 일컫는 불교 용어)처럼요.”

―가장 기억에 남는 어머니의 말은 무엇인가요.

“‘밥 무라’ ‘거 앉아라’ ‘고마 가서 공부해라’처럼 자주 들은 말들이 자꾸 생각나죠.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굉장한 무게가 담겨 있는 함축적인 말들이죠. 남들이 보면 정신없는 사람이 한두 마디 내뱉는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굉장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깊은 심연에 가 닿는, 서로 합치되는 느낌을 받았죠. 그런 말을 하실 때 순간순간 너무 행복하고 기뻤어요. 어머니가 그런 힘든 여건에서도 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도 저에게 사랑을, 주체성을 가르쳐줬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감사했지요.”

―“공부하다 오나?” “고마 가서 공부해라” 등 공부에 대한 말을 많이 하셨더군요.

“어머니에게 저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극성스럽게 관리해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세대에서는 흔치 않은 왼손잡이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왼손 쓰는 걸 편히 여기니까 억지로 교정하지 않으셨어요. 구속하지 않고 본성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놀든 공부하든 크게 잘못하지 않으면 그냥 두셨죠. 하지만 엄마가 근심과 걱정으로 내 공부길을 평생 지켜보셨더라고요. ‘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가 혼몽한 중에도 내 공부를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웃긴다꼬 웃기”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고요.

“오래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이 말이 자신이 처한 난처한 상황,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실존’에 대한 아이러니적 발화(發話)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죽지도 못하고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닌, 링거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죠. 아이러니는 반성적 인식이 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인간 특유의 정신적 현상입니다. 인지 저하증이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를 느끼지 못할 것이란 통념을 갖기 쉽습니다. 인지 저하증 환자는 몸이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제가 관찰한 결과로는 더 예민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느끼더라고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아이러니를 느꼈고 언어로 표현하셨습니다. 인지 저하증 환자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아들! 서울대 교수!”라고 간병인에게 자랑도 하셨다죠.

“제가 교수라고 드러내는 걸 탐탁잖게 여기는 편입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의 한 주민은 저를 고시 폐인으로 알았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웃음) 부모님에게도 아들이 교수라는 사실을 되도록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 드리곤 했는데, 인지 저하증이 마음의 억제력을 약화시키나봅니다. ‘나를 깔보지 마라, 무시하지 마라, 존중하라’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라는 게 바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거니까.”

“내가 아파 니 기 챈다.”

박 교수 가족은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대신 재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기로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다음 해인 2018년 추석 무렵까지 큰 불편 없이 집에서 생활하였다. 하지만 그해 10월 10일 오전 극심한 요통이 왔다. 실버타운 부속 의원에서 진통제를 맞았지만 소용없었다. 구급차 타고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를 받았다.

어머니는 이날 오후 실버타운에 돌아왔지만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간병인 도움도 잠시 받아봤지만, 집에서 모시기 힘들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요양병원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다른 선택지를 알아보던 가족은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입원시키지 않았나요.

“아버지가 저하고 동생한테 요양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서울 시내 요양병원을 알아봤죠. 그렇게 확인한 정보를 말씀드리니까 아버지가 ‘그건 안 되겠다. 느그 어머니가 발작은 하지만 정신이 또렷한데 요양병원에 넣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셨어요. 요양원에 대해서는 ‘너희 어머니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며 더 부정적이셨고요. 그러면서 ‘집에서 해보자’는 합의가 됐어요.”

요양병원은 의사나 한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병원인 반면, 요양원은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 시설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은 노인은 ‘요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 병원과 시설을 삶의 종착역,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감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결국 재택 요양을 못 하게 됐지요.

“어머니가 발작을 하면서 아버지가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너희 어머니가 발작을 하면 장사(壯士)가 된다’고요. 그렇다고 가끔 가는 저희 형제들이 할 수도 없고요. 2017년 의사가 ‘요양병원에 당장 보내라’고 할 때는 냉혹하구나 했는데, 오랫동안 봐왔으니까 그랬던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요양병원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했습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요양병원은 적극적 의료 행위를 하는 의료기관입니다. 생명 연장을 위한 개입이 더 많죠. 어떻게든 사람을 치료하는 쪽이죠. 반면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산소호흡기도 안 됩니다.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고통을 덜 느끼면서 사시다 가게끔 하는 케어(care)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입니다. 고통이 있으면 완화해주고, 장애나 불편이 있으면 치료해주는 정도에 그치는 겁니다.”

국내에서는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네 질환을 앓는 생애 말기 환자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 모든 병원이 제공하지는 않는다. 2020년 11월 현재 전국 의료기관 87곳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지정돼 입원형(호스피스 병동 입원)과 가정형(자택 방문), 자문형(일반 병동과 외래 환자 대상)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우선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집에 찾아오는 가정형 서비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곧 입원형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가정형 호스피스를 그만두고 입원형으로 전환한 이유가 뭔가요.

“가정형 서비스를 처음 받았을 때는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서 처치받다가 돌아가시면 한이 없겠다 싶었죠. 그런데 말기 암에 인지 저하증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건 하루하루 전쟁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간호사가 방문하고, 일주일 또는 2주마다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의료적 처치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병원에서 대하는 태도에 따라 환자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어떤 병원 의료진은 어머니를 사물화하는 편이었지만, 어떤 병원 의료진은 어머니를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병원에 있느냐에 따라 어머니는 의료진과 간병인에게 눈총받는 천덕꾸러기 신세일 때도, 간호사와 동료 환자들에게 사랑받는 ‘스마일 할머니’일 때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요. 환자가 ‘이해’의 대상이냐, 아니면 ‘처치’의 대상이냐에 따라 전혀 달라져요. ”

―시설이나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의사를 잘 만나야 가능한 건가요.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모범적 시스템의 중심에는 의사가 있었어요. 병원의 시설이 낡았는가 최신식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인간적인 따스함이 감돌았습니다. 그것은 의사의 태도와 자세에 기인했습니다.”

―환자에 대한 ‘화학적 제어(chemical restraint)’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하신 듯합니다.

“호스피스 병동 환자는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상태기 때문에 약이 바뀌면 즉각 변화가 나타납니다. 약을 바꾸거나 증량하면 의사가 환자 측에 말을 해줘야 합니다. 어떤 의사는 말을 하고 어떤 의사는 하지 않습니다. 가족은 환자 상태를 잘 관찰해서 의사와 의견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는 환자 보호자와 의료진 특히 의사와의 소통과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도토리묵을 쑤고 호랑이콩을 삶아 먹이는 등 음식에도 신경 쓰셨던데요.

“제 나름의 분류에 따르면, 호스피스 병실에는 3단계의 환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밥을 먹는 환자이고, 둘째는 죽을 먹는 환자이며, 셋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환자입니다. 환자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인간의 주체성을 확보합니다. 곡기를 끊으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게 되며, 주사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반혼수상태를 거쳐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곧 숨을 거둡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좋은 호스피스 병원이란 특히 두 번째 단계 환자에게 세심함과 배려를 보여주는 병원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 환자가 가장 까다롭고 다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호스피스 병실 의료진은 웬만하면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똥도 안 누니까 다 편하죠. 환자의 입장보다 병실 관리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듯했습니다. 한 병원 의사는 나를 따로 불러 한 시간 반이나 교육하면서 어머니에게 억지로 뭘 먹이지 말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했어요. 의사들은 꼭 먹이지 말아라, 돌아가실 때가 돼서 그런다고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거는 제가 옳았어요. 의사들 말대로 어머니를 먹이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돌아가셨을 겁니다.”

―‘고통 없이 가시게 하지 뭐 하러 질질 끄나’ 생각할 수도 있을듯한데요.

“그게 다 의미 있는 생의 일부더라고요. 어머니의 마지막 석 달은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말을 많이 주고받아 아버지에게도 형에게도 너무 좋은 기억이 많아요. 태양이 한낮에 짱짱함도 있지만 낙조(落照)가 들면서 질 때의 특별함도 있지 않습니까. 모두 생의 의미 있는 과정이지요.”

―교수님 어머니에게만 주어진 운 좋은 경우는 아닐까요.

“보통 다른 집들은 병원이 시키는 대로 따를 겁니다. 물론 우리 집도 회한이 있습니다마는, 제 어머니는 마지막에 나름대로 잘 사시다 가신 것 같아요. 가족이 의료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약물에 대한 개입이 제일 중요합니다. 병원에서는 환자 상태가 조금만 나빠지면 더 센 약을 투여하거나 양을 늘립니다. 식물인간처럼 가만히 있게 환자를 화학적으로 통제하는 거예요.”

“엄마! 다음 세상에 또 만나요!”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인 2019년 10월 21일 호흡이 끓어질 듯 말 듯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다. 박 교수는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임종이 가까워졌다 여겨 엄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의 귀에 대고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갑자기 ’어어어‘ 하는 소리를 내셨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또 엄마 귀에 대고 이리 말씀 드렸다. ’엄마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나 학자가 됐어요. 엄마, 감사해요. 다 엄마 덕분이에요. 엄마, 정말 감사해요. … 나는 엄마의 메시지가 대체로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 희병아. 잘 있어라. 그리고 건강하게 공부 잘해라. 그동안 고맙다. 나도 네 덕에 좋았다.” 어머니 임갑연씨는 사흘 뒤인 24일 오전 12시 30분경 박 교수를 쳐다보고는 숨을 거두었다.

―“어어어”에 과연 그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요.

“분명 의미 있는 발화(發話)였어요. 며칠 전부터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계셨는데 내가 말을 하자 갑자기 입을 우물거리고 눈을 감으신 채로 깜짝깜짝거리셨어요. ‘정상적’ 인간과 다르게 의미를 주고받는 방식이었어요.”

박 교수는 다음 글로 책을 마무리했다. “엄마를 보내고 나니 내 삶은 엄마가 계실 때와 안 계실 때로 확연히 나뉜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초로에 접어든 만큼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골똘히 생각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보내면서 본인은 어떤 죽음을 맞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외롭되 자유롭고 자유롭되 외로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주체성을 삶의 본질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떠밀려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안락사가 더 공론화되어 존엄한 죽음이 우리 사회에서도 선택 가능하게 되면 좋은데, 당장 그렇게 되겠습니까.

―안락사에 찬성하시나요.

“‘자유 죽음’이라는 게 있습니다(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Amery)가 만들어낸 말이자 책 제목으로, ‘자기 자신을 살해한다’는 의미의 자살을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한다’는 자유 죽음으로 대체하자며 제안했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죽어야 하나 고민입니다. 저만의 고민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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