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이유를 찾아주는 사회

청소년 마당ㅣ나도 쓴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교육과정은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심미적 감성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등 4개 인간상과 6개 역량의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보편타당한 교육의 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참으로 명색만 좋은 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의성’ ‘자주성’은 뭔가요, ‘심미적 감성’은 또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생각만큼 잘 행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느끼는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은, 시험을 잘 보고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험에 나오면 외우고, 아니면 말고 식의 공부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시험 외에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최준영 학생 제공

현재 교육 목적의 문제는 어디에 있으며, 또 우리 교육은 앞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지금처럼 시험에 중점을 둔 교육은 주위의 정책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결국엔 사교육의 확대를 유도하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오직 숫자로 이루어지고, 그 숫자만을 바탕으로 학생들 간의 상하관계를 구성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주적인 힘을 기를 것이며 그 힘을 바탕으로 하는 창의성을 기르게 되나요? 어떻게 반 친구들과 온전히 마음을 터놓고 공동체의 역량을 기를 것인가요? 시험을 위해 예술의 해석을 단일화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심미적 감성을 기를 수 있나요?

공동체 역량, 심미적 감성, 창의성과 자주성 등을 기르기를 바라면서 숫자로 표현되는 지표들에 얽매이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요. 그러한 교육 속에서 학생들더러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은 너무 과한 부탁이 아닌가요? 시험을 치지 말고, 평가가 없는 학교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은 학생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했는지, 또 교육과정이 얼마나 적절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야지 본래의 목적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작 숫자 따위로 한창 성장 중인 사람을 평가하는 건, 당장 눈에는 안 보이는 우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학교는 인터넷 강의나 학원에서는 전달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을 전달해야 합니다. 명색만 차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심미적 감성을 길러주고 자주성을 길러주고,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그 대답이 단지 시험과 숫자로 된 평가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준영(부산 센텀중3)
※ <한겨레> 교육 섹션 ‘함께하는 교육’에서 청소년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현재 초중고에 다니는 학생이나 학교 밖 청소년이 직접 쓴 글이면 됩니다. 연예인, 취미, 학교, 학원, 친구, 가족 얘기는 물론 자신의 바람이나 시사문제 등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선정된 글은 지면과 온라인 기사로 발행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이름,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haniedutext@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원고지 7장, 한글파일로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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