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freepik
“저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진료를 보러 오셨다가,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ADHD로 진단된 분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차 키를 어디에다 뒀는지 매번 까먹어서, 그걸 찾느라 출근 시간을 한참 잡아먹어요.”
“아내가 집에 올 때 뭘 사 오라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렸어요.”
“직장에서 새로운 기계 작동법을 배웠는데, 막상 써보려니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여러 번 천천히 얘기해 달라고 했어요.”
위의 예는 각각 장기기억, 미래계획 기억, 단기 및 장기기억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ADHD로 진단된 사람 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가려고 했는지’, ‘무엇을 가져오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고 곤란했던 경험이 흔해서, 기억력 문제는 자신도 쉽게 인식하는 편이다. 특히 대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있다든지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기억력 문제는 주변 사람에게도 티가 나고 본인도 더욱 크게 인식하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덜렁댄다, 꼼꼼하지 못하다, 실수가 잦다, 불성실하다, 무책임하다, 게으르다, 성의가 없다, 예의가 없다, 머리가 나쁘다‘고 표현하며, 자신도 ’잘 까먹는다, 머리가 나쁘다, 짜증 난다, 답답하다, 한심하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기억력 문제는 주의력 문제와 관련된다. ADHD 진단기준에 보면 부주의 증상 중 ‘일상 활동을 자주 잊어버림’, ‘과제나 활동에 필요한 물건을 자주 잃어버림’ 같은 기억력과 관련된 항목이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주의집중에 문제가 있으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도 상대가 한 말을 지금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그게 어떻게 기억이 날 수 있겠는가? 이처럼 ADHD로 진단된 사람이 기억력의 문제를 가지게 되는 것은, 처음 정보가 제시될 때 주의력 부족으로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단기,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기억력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1. 우선, 어떤 상황, 어떤 영역에서 주로 기억력 문제가 생기는지 살펴본다.
일정 기간, 예를 들어 일주일 동안에 기억을 못 해 문제가 됐던 경우를 매일 기록해 본다. 주로 친구와의 약속인지, 공부와 관련된 것인지,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인지 자신의 약점을 파악한다.
1) 어떤 종류의 기억 문제가 흔한가?
2) 잊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3) 이 문제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2. 기억력 문제를 줄이기 위해 효과적인 외부전략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메모하기(일기쓰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가급적 모두 기록하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돌다 보면 빠뜨리기 쉽다. 계획, 아이디어, 후회되는 점, 약속, 해야 할 일, 필요한 물품 등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는 영어를 왜 하려 하나? 어떤 방법으로 배울 것인가? 방법마다 비용은 얼마인가? 각 방법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의 흐름을 기록하고, 정리해 보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이라고도 하며, 요즘 스마트폰에는 원 노트, 에버노트, 노선처럼 여러 기기에서 자동으로 동기화되는 훌륭한 메모 앱들이 많이 있다.
2) 달력(주간/월간)
해야 할 일들은 대개 적절한 시기와 시한이 있게 마련이다. 이 시한을 놓치면 비난받고 자책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스케줄러(예: 구글 캘린더)를 하나 정해서 거기에 필요한 약속을 기록하고 매일 확인하면, 빠뜨리는 실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월 25일 저녁 7시 가족의 생일파티’, ‘1월 17일 오전 10시 중요한 회사 영업 미팅’ 이런 식으로 기록한다.
3) 목록
목록을 작성하는 습관은 큰 도움이 된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메모 앱을 이용해서 ‘할 일’ 목록 to do list, 쇼핑 목록, 집안일 목록, 아이디어 목록을 만들고, 해낸 다음 체크를 하는 버릇을 들이면, 까먹고 빠뜨리는 일도 줄어들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며, 스스로 자신감과 성취감에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사를 하면서, 인감증명서 떼기, 1시에 부동산에서 만나기, 잔금 이체하기, 관리비 납부하기, 주민센터에 신고하기, 새 관리소에 신고하기, 가스관 개통하기, 전화회사 연락하기 등등을 기록하는 것이다.
4) 시계와 알람 사용
지금 몇 시인지 바로 알 수 있도록 방마다 잘 보이는 곳에 시계를 두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인식이 되면서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알람을 사용하면 해야 할 일을 적절한 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할 수 있다.
출처 : freepik
3. 잘 기억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써볼 수 있는 내부 전략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반복과 시연
전화번호나 주소를 외워야 하는데 당장 메모하기 어려운 경우 우리는 흔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 번호를 몇 번 되뇌면서 외우려고 노력한다(예: 010-456-7890, 산만로 789번지). 이처럼 나지막한 소리로 반복하는 방법은 기억에 다소 도움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속에서 혼자 묻고 답하는 방법도 약간 도움이 된다(예: 이번에 이사 간 우리 집 주소가 뭐였더라? 산만로 7백… 몇 번지였지…?)
2) 시각 단서 만들기
외워야 할 정보를 시각적인 이미지와 연결하면, 기억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된다. 기괴하고 과장된 이미지일수록 더 기억하기가 쉽다(예: 수도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급류타기를 하면서 은행에 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3) 암기법
암기법의 종류는 매우 많은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머리글자 암기법을 소개한다(예: 집에 가는 길에 사가야 할 물건이 파, 두부, 콩나물, 바게트, 고무장갑이면, ‘파두콩바고’ 라고 작은 소리로 외우는 것이다.
4) 시간 간격을 둔 인출
인출은 은행에서 돈을 뽑듯이,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을 말한다. 유명한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에 따르면, 지금 당장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우는 것보다, 5분, 30분, 1시간, 다음날, 다음 주, 다음 달, 이런 식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간격을 넓혀가는 방식의 반복이 훨씬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방식이나, 누군가에게 가르치듯이 기억을 떠올리면 더욱 효과적이다(예: 조선 건국 연도는 1392년, 임진왜란은 1592년이라고 외웠다면, 하루 뒤 조선 건국이 언제였더라? 임진왜란이 언제였지?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일주 뒤에 스스로 또 물어본다). 이런 식으로 하면 완전한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해 보고, 자신에게 효과적인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