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못읽자 소리로 공부했다···백혈병 딛고 서울대 간 여고생
“병실 청소해주신 여사님, 간호사·의사 선생님 그리고 학교 친구들·선생님이요.”
2021학년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한 채예원(19)양에게 수험 기간 가장 고마웠던 사람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경북 구미시 도량동에 사는 채양은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 2019년 2월 백혈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1년간 휴학을 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면역억제제와 진통제를 먹어가며 수험 생활을 보내야 했다. 노력 끝에 서울대에 합격한 채양은 “서울대에 간다고 인생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백혈병 걸린 도량동 모범생
27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만난 채양은 유쾌했다. 그는 “수능을 마치고 조금 쉬었다”며 “대학 갈 생각에 기쁜 마음이 앞선다”며 웃었다. 채양은 “원래 긍정적인 편”이라며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도 금방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아직 완치 상태가 아닌 그는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걸어 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경북 구미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채양은 경북외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여느 학생들처럼 늦은 저녁까지 동네 놀이터나 카페를 누볐다. 학원은 동네 영어·수학 학원만 다녔다고 한다. 지방 외고에 합격한 뒤 전교 부회장에 당선됐다. 학교에서는 생활관 아침체조 도우미로 유명할 만큼 건강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직전, 암이 찾아왔다. 2019년 1월 아침 등교를 해야 했지만 채양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눈과 잇몸에 염증이 생겼다. 처음엔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대학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백혈병.
이후 휴학계를 제출하고, 1년 내내 병마와 싸웠다. 항암 치료를 4번 받았고, 언니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수술도 받았다. 거부반응이 일어나 손발의 피부가 벗겨졌다. 하지만 병상에서 공부를 멈추지는 않았다. 글자가 읽히지 않아 인강(인터넷 강의)을 소리로만 들었고, 영어 지문을 읽을 집중력이 없을 땐 암기과목에 몰입했다.
친구 백혈병 소식에 모인 헌혈증 ‘1500장’
채양은 자신이 무사히 수험생활을 마친 것이 학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채양의 백혈병 진단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헌혈증을 모았다. 후배, 동기가 단체로 헌혈하기도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헌혈증을 기부받았다. 이렇게 모인 헌혈증은 1500장이 넘는다. 채양의 치료에 쓰고 남은 헌혈증은 백혈병 환우 카페에 기부될 예정이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모은 성금도 600만원이 넘는다. 소식을 들은 도 교육청도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학교는 채양의 복학 준비를 도왔다. 반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고위험군인 채양을 위해 번갈아가면서 ‘보건도우미’를 정해 주기적으로 환기·소독 작업을 했다. 기숙사에서는 1인실을 내주고, 채양의 어머니만 일주일에 한 번씩 오도록 허가했다. 채양의 담임 선생님은 “예원이가 도움만 받은 것은 아니다”라며 “워낙 모범생에 전교 부회장 출신이라 팀별 활동에서 후배들을 많이 챙겼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사히 공부를 마친 채양은 수능을 일반 시험장에서 치렀다. 약 한 달 뒤엔 서울대로부터 합격 소식을 들었다.
“국제문제 해결하고파”
채양은 “기후변화과학외교국에서 환경보호를 실현하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학에서는 해외봉사·국제학생협회 활동·국제기구 인턴십 등에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알고 싶은 게 많은데 영어를 공부하면서 배움의 깊이가 더 커졌다”며 “외교관 활동을 하며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채양은 많이 울었다고도 했다. 그는 “아픈 부분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나처럼 아픈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글 못읽자 소리로 공부했다···백혈병 딛고 서울대 간 여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