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는 백신, 어떻게 만들어질까?
[백신의 모든 것] (4) 생백신부터 유전공학 백신까지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흔히 ‘예방주사’나 ‘예방접종’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사실상 백신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지만 정확한 의미에선 다소 차이가 있다. 능동면역이 아닌 수동면역을 기대하고 항체 물질을 미리 주사로 맞기도 한다. 정맥 내에 면역글로불린이나 단클론항체(단 하나의 항원 부위에만 항체반응을 일으키는 항체)을 사용하는 경우다. 말라리아의 경우 예방목적으로 여행 기간 치료제를 정기적으로 투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백신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실제로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대중적으로도 ‘예방주사’나 ‘예방약’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백신(vaccine)은 인체의 후천성 면역, 이른바 ‘능동면역’을 끌어내기 위한 경우를 한정해서 말한다. 백신의 필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백신 자체가 감염의 원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도리어 코로나19에 감염이 된다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둘째, 병원체를 중화시키거나 억제하는 항체가 B세포에서 생겨나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T세포의 활성화도 유도해야 한다. 말이 어렵지만 결국, 안전하고, 항체도 잘 생겨나야’ 좋은 백신이라는 의미다. 이런 백신은 예방할 병원체에 따라 다양한 개발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된다. 백신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백신’은 정말 ‘사백신’ 보다 위험할까?
홍역은 백신으로 일평생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GettyImages
백신의 목적은 능동면역을 얻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병에 직접 걸렸다가 낫는 것이다. 우리 몸은 병원체가 들어오면 선천성 면역을 통해 병과 싸우기 시작하고, 그 사이 면역세포들이 자연스럽게 후천성 면역을 획득해 결국 병을 몰아낸다. 어릴 적에 홍역을 한 번 앓았던 사람은 일생 홍역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병에 걸렸다가 회복되면서 충분한 면역을 확보하는 방법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와 능동면역을 얻기는 하지만,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병원체를 아주 약하게 만들어서 주사로 맞으면 어떨까? 이 방법을 흔히 ‘생백신’이라고 부르는데, 의학계에선 ‘약독화 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이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한다. 줄임말로 ‘약독화 백신’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과거 약독화 생백신을 만들 때 야생의 병원체를 단순히 묽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위험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웠다. 특정 질환은 극미량의 병원체만 들어와도 빠르게 증식하며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생백신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세균 또는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를 실험실에서 변형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실제로 질병을 일으킬 위험은 크게 낮아진다.
약독화 생백신 중 바이러스 질환에 쓰이는 것은 홍역이나 볼거리, 풍진 등의 백신이 대표적인데, 이 3가지를 하나로 합친 ‘MMR’이라는 혼합백신도 있다. 여기에 수두나 황열 백신도 모두 약독화 생백신의 일종이다. 인플루엔자(독감)도 여러 가지 백신이 나와 있는데, 코점막에 뿌리는 방식의 백신의 경우는 약독화 생백신으로 만든다. 세균성 질환도 약독화 생백신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BCG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살모넬라균에 감염돼 생기는 ‘장티푸스’의 경우도 있는데 드물게 약으로 먹는 ‘경구용 백신’으로 나와 있다.
최초의 백신으로 알려진 건 역시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개발한 천연두 예방 백신일 것이다. 사실 완전히 최초의 백신이라고 보긴 어렵다. 천연두 환자의 피부에 생긴 딱지를 말려 가루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약독화한 후 사용하는 소위 ‘인두법’은 인도나 중국 등에서 사용한 바 있고, 유럽에도 알려져 쓰이고 있었으며, 미국 등에선 위험성을 들어 금지하기도 했다. 다만 제너는 목축업 종사자들이 우두(소의 천연두)에 걸려 가벼운 증세를 겪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대에도 약독화 생백신을 만들 때 병원체의 형태를 변형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두법은 현대 약독화 생백신의 기본 형태를 갖췄다고 여겨진다.
백신 제조법 중 약독화 생백신만큼이나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불활성화 백신(일명 사백신)’일 것이다. 불활성화 백신은 병원체를 말 그대로 ‘더는 활동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불활성화 방법은 열이나 방사선, 포름알데히드 등을 두루 이용하는데, 병원체 자체의 생명현상을 완전히 정지시키는지(죽였는지)보다는 증식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이러스나 독소 등은 생명체가 아니며, 따라서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질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약독화 생백신은 비록 약독화를 했다고 해도 제한된 감염과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불활성화 백신은 살아있는 병원체를 사용하지 않아 이런 우려가 적다. 다만 병원체를 불활성화시켰을 경우, 병원체의 감염을 일으키는 부분 이외의 모든 부속 단백질에 대한 항체도 같이 유도될 수 있다. 면역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뭉뚱그려 진행되는 식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능동면역이 약하게 일어나고, 면역 기간도 짧은 편이다. 이런 문제는 백신을 여러 차례 맞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다만 이물질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알레르기 반응과 쇼크 등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단점이다. 사백신의 경우 바이러스의 경우 뇌염과 광견병, A형 간염, 인플루엔자 백신, 유행성출혈열 등이 자주 쓰인다. 세균 질환의 경우 백일해, 장티푸스(주사제), 콜레라 등에도 효과가 있다.
전통 백신 한계 극복한 ‘재조합백신’
백신은 보통 주사 형태로 투여하지만 드물게 코에 뿌리거나 먹는 형태도 존재한다. ⓒGettyImages
‘백신은 생백신과 사백신으로 나뉜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백신을 크게 약독화 생백신과 ‘불활성화 백신(Inactivated Vaccine)’의 두 종류로 두 종류로 구분하는 경우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약독화 생백신이 아닌 모든 백신은 불활성화 백신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다양한 백신 제조방법이 생겨나면서, 꼭 이대로 구분하기 모호해 추가로 다양한 명칭이 쓰이고 있다. 병원체의 성분 일부만을 추출해서 사용하거나, 혹은 병원체의 성분 중 일부를 인위적으로 제조해 만든 백신의 경우 불활성화 백신으로 구분할지 모호하다.
예를 들어 디프테리아나 파상풍 등은 세균에서 생겨나는 독소(toxin) 그 자체가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로, 독소 그 자체를 항원으로 삼아 항체가 생겨나면 증세를 예방할 수 있다. 이 독소 자체도 열과 화학물질로 불활성화할 수 있는데, 이것을 톡소이드(변성독소) 백신이라고 부른다. 독소이긴 하지만 일단 불활성화 과정을 거쳤으니 불활성화 백신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병원체 자체를 불활성화한 경우와 다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최근엔 ‘재조합백신’이라는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아단위백신(Subunit Vaccine)’을 꼽을 수 있는데, 한국어로 바꾸면 ‘특이항원 추출백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원체의 구성성분 중 면역을 유도할 수 있는 성분(항원)만을 추출해 사용하는 백신이다. 병원체의 표피나 세포막 중 일부 성분(특정 단백질 조각 등)을 이용해 능동면역을 얻는 식이라서 아단위단백질백신(Protein Subunit Vacci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조 과정에서 병원체의 유전자를 재조합할 필요가 있다. 필요 성분이 적으니 전통적인 불활성화 백신과 비교하면 부작용이 적은 것이 장점으로, 백일해나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백신 등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
이 밖에 아단위단백질백신과 비슷한 것으로 ‘바이러스유사입자백신(VLP)’도 있는데, 이름 그대로 항원과 굉장히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재조합 단백질이다. 실제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외부 표피를 흉내 내 만든 입자를 이용해 면역을 기대하는 식이다. B형간염백신, 자궁경부암백신 등을 이 방법으로 만든다.
생명공학의 총아, 유전공학 백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은 바이러스백터백신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생명과학이 지속해서 발전하며 이른바 ‘유전공학 백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편집하거나,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 필요한 항체를 직접 생산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백신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유전공학 백신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우선 ‘바이러스벡터백신(Virus Vector Vaccine)’을 꼽을 수 있다. 이 방법은 바이러스가 세포를 침식해 들어간 다음, 세포의 단백질 생산 능력을 이용해 다시 자신을 복제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항원이 될 수 있는, 감염성은 제거한 항원이 될 수 있는 일부 물질을 안전한 다른 바이러스의 껍질(벡터)에 집어넣어 만든다. 여러 종류의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 또는 렌티바이러스(Lentivirus) 중에서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는 것을 이용한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 몸속 세포에서 복제되기 시작하는데, 이 바이러스 속에 코로나19 항원이 섞여 있음으로 면역을 갖게 된다. 영국에서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방법으로 개발됐다.
이보다 한 발 더 진보한 것이 ‘핵산 백신’이다. DNA(유전자) 또는 mRNA(유전자정보전달물질)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병원체의 항원에 해당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물질을 직접 우리 몸에 주입한다. 이렇게 되면 세포 안에서 해당 병원체의 항원 단백질이 합성된다. 이 역시 바이러스벡터백신과 비슷하게 우리 몸속 세포가 필요한 항원을 생산하게 된다. 원리면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부작용 역시 적은 방법이지만 그간 연구개발이 더디다가 코로나19 백신개발 과정에서 실용화된 가장 최신기술이다. 미국의 화이자, 모더나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mRNA를 이용해 만들었다. 이런 점을 보면 유전공학 백신은 어찌 보면 바이러스나 유전물질을 이용해 약독화 생백신을 우리 몸속 세포에서 직접 생산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신의 종류를 구분해 보면 질병과 싸워온 인류 생명과학의 발전역사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으로 인류의 가장 큰 숙적인 암은 물론 당뇨, 치매 등의 질환에 대한 백신도 핵산 백신 등의 신기술을 통해 차츰 개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비약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간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인류가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