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보노보보다 관대하고 침팬지보다 사악한 ‘인간’

[강석기의 과학카페] 보노보보다 관대하고 침팬지보다 사악한 ‘인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리한 나치 무장친위대 장교와 군의관의 모습이다. 인간의 주도적 공격성 진화는 이처럼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키피디아 제공

많은 사람은 우리의 선한 면인 낮은 반응적 공격성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감정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악랄한 행위를 일으키는 높은 주도적 공격성의 형태인 우리의 악한 면 또한 우리의 진화적인 과거에 기인한다.
– 리처드 랭엄

 

최근 ‘정인이 사건’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불운한 사고사나 학대로 인한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검찰도 사건을 살인죄로 규정했다. 입양되기 전 찍은 사진 속에서 생글생글 웃던 아이가 1년 뒤 끔찍한 폭행으로 생을 마감한 비극이 지금 여기서 벌어졌다는 게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만 지난해 드러난 ‘n번방 사건’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만행이 버젓이 벌어졌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까지 대가며 이를 부추겼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대다수가 느끼는 현실은 조금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사건 뉴스가 나오고 폭행, 폭력 사건이 알려지지만 일상에서 살인과 폭력을 직접 마주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야에 파출소를 가야 어디선가 주먹을 휘두르다 붙잡혀온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대다수는 성품이 온화하고,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사람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일까. 시야를 넓히면 꼭 그렇지는 않다. 역사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국지전이나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70년 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가 생지옥이 됐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평화가 유지된 게 행운 아닐까.

자기 길들이기가 반응적 공격성 누그러뜨려

지난 11월 미국 하버드대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교수의 책 ‘The Goodness Paradox’의 한글판이 나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독특한 공격성 패턴이 진화한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교보문고 제공

미국 하버드대의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이 2019년 펴낸 책 ‘The Goodness Paradox’의 한글판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에서 랭엄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공격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격성은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이라는 유형이 있고, 인간은 각각에 대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화했다.

 

흥미롭게도 공동조상에서 인류와 약 700만 년 전에 갈라진 침팬지와 보노보는 공격성의 관점에서 다른 길을 갔다. 즉 침팬지는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 모두에 능한 공격적인 종이 됐고 보노보는 둘 다 자제하는 온화한 종이 됐다. 

 

세 종을 비교하면 인간은 주도적 공격이라는 면에서는 침팬지보다도 사악하고 반응적 공격에서는 보노보보다도 관대하다. 책 한글판 제목을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이라고 붙인 이유다.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두 공격성의 조합을 지니게 진화했을까.

지난 2011년 개봉된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침팬지 시저가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키는 약을 먹고 언어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유인원을 규합해 인간에 대항한다는 시나리오다. 실제 인간이 고도의 주도적 공격성을 진화시키게 된 데에는 언어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반응적 공격은 위협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으로, 분노나 공포 같은 강한 감정을 수반한다. 야생 동물은 기본적으로 반응적 공격을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사슴이 예쁘다고 다가가 쓰다듬으려고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실제 북미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공격하는 야생 동물이 바로 사슴이다.

 

야생 동물의 가축화와 길들이기는 이런 반응적 공격성을 크게 줄여 사람과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으로 유전적 변이를 수반한다. 갓 태어난 늑대 새끼를 키워도 절대 개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길들인 동물의 뇌를 같은 종의 야생 동물과 비교해보면 반응적 공격성에 관여하는 부위인 편도체가 작다. 반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수치가 높다.

 

흥미롭게도 침팬지와 보노보의 관계는 늑대와 개의 관계와 비슷하다. TV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편집된 영상만 접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침팬지의 무시무시한 공격성을 잘 모르고 있는데, 랭엄은 책에서 침팬지의 반응적 공격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감정의 폭발이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일은 드물다. 특히 과일이 풍부하고, 하위 집단이 많을 때 공격, 두려워서 내는 비명, 구타는 침팬지 생활에서 일상적인 것이다.”

 

반면 보노보 사회는 침팬지에 비해 싸움이나 폭력이 일어나는 빈도가 낮고 강도도 약하다. 평생 수컷에게 맞고 사는 침팬지 암컷과는 달리 보노보는 수컷이 암컷을 괴롭히는 일도 드물고 먹이 역시 독점욕이 강한 침팬지와는 달리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랭엄은 보노보 사이에서 보여주는 신뢰가 “공격과 두려움이 눈에 띄게 감소함으로써 명백하게 촉진됐다”고 설명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90만~210만 년 전 갈라진 뒤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 모두 자제하는 관대한 종이 됐다. 그럼에도 사람 옆에 성체 보노보를 자유롭게 놔두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 보노보 무리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침팬지와 보노보는 90만~210만 년 전 공동조상에서 갈라졌다. 이 사이 보노보는 늑대에서 개가 나온 것처럼 온순한 유인원이 됐다. 그리고 보노보를 길들인 주체는 보노보 자신이다. 바로 ‘자기 길들이기’다. 철저한 수컷 중심 사회인 침팬지와는 달리 보노보는 암컷들이 연합해 무리를 지배했고 공격적인 수컷을 응징했다. 그 결과 성격이 점차 온순하게 진화하면서 관대한 사회를 이루게 됐다. 

 

인간 역시 보노보처럼 자기 길들이기를 통해 반응적 공격성이 크게 줄었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다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진화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이 제안한 ‘사형 가설’에 따르면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폭력적인 개인을 집단의 남성들이 제거하는 시스템이 반응적 공격성이 낮은 개체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는 인간의 언어 발달이 결정적인 역학을 했다. 1:1로 싸워서는 게임이 안 되는 남자들이 언어를 통해 음모를 꾸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랭엄은 “우리는 집단 안에서 남성들의 살인 능력(사형)을 두려워하도록 진화했다”며 그 결과 사회의 규범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감정인 수치심, 당혹감, 죄책감이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자기 길들이기 과정에서는 뇌의 감정 영역과 함께 그 부분을 통제하는 전전두엽의 진화도 일어났다. 본능적 감정 회로는 약해지고 통제 회로는 강해지니 반응적 공격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술집에서 폭행 사건이 많이 나는 건 알코올이 전전두엽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주도적 공격성 차원 높여

공격성은 반응적 공격(reactive aggression)과 주도적 공격(proactive aggression)으로 나뉘는데, 뇌의 작동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다. 반응적 공격을 할 때는 편도체(amygdala) 활성이 커지고 전전두엽(PFC) 활성이 작아지는 반면 주도적 공격을 할 때는 그 반대가 된다. 인간은 반응적 공격을 자제하고 주도적 공격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진화했다. ‘심리 범죄 및 법률’ 제공

주도적 공격성은 무리지어 사는 동물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영역을 지키거나 확장하려면 주변의 다른 무리와 마찰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개체가 희생된다. 특히 혼자 떨어져 있는 개체가 다른 무리를 만나면 십중팔구는 공격당해 죽는다. 

 

침팬지는 큰 희생이 따르는 전면전보다는 여러 마리가 팀을 짜서 매복과 습격을 통해 한두 개체씩 제거해 상대 무리를 궤멸시키는 전략을 쓴다. 수렵채취인 역시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없앤다. 반면 보노보는 낯선 두 무리가 만나도 피를 흘리는 일이 거의 없다.

 

한편 무리 내부의 폭력적인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남성들의 연합은 내부를 향한 주도적 공격성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주도적 공격성이 반응적 공격성을 낮추는 진화를 이끈 셈이다. 랭엄은 “언어는 키메라 같은 인간성을 만들어, 정서적 반응의 감소와 살해 능력의 증대를 낳았다”며 이 과정에서 언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인간 공격성 진화 과정에서 감정이 무딘 변이체도 나왔다. 바로 사이코패스 성향의 탄생이다. 이들은 도덕성과 공감력이 미미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지만, 함부로 발톱을 내놓지는 않는다. 반응적 공격성이 낮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리에서 별 탈 없이 살아남았다.

 

1만 년 전 농업의 발명으로 사회 규모가 커지고 소수의 남성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주도적 공격성이 고도로 정교화되자 랭엄의 표현을 빌면 “성공한 인간들에게 영장류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주었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전례 없는 고통을 주었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결과다. 

 

실제 역사상 큰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이 냉혈한, 사이코패스 성향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만든 국가 시스템의 정교함에 압도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데 동참했다.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하라고 지시한 건 소수의 사이코패스 성향 지도자들이지만 현장에서 이를 수행한 사람들 대다수는 평범한 독일인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존 달버그 액턴은 “위인들은 항상 악인들이다”라고 일갈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는 대규모 주도적 공격의 해악을 절실히 느꼈고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많은 정치적 개선을 이뤄냈다. 그 결과 지난 70년 동안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다(물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나 21세기 들어 오랜 평화가 지루해졌는지 다시 사이코패스 성향인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권력을 잡으며 인류는 자중지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의사당이 폭도에 점거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거에 진 현직 대통령이 이들을 부추겨 SNS 계정이 폐쇄되고 탄핵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반응적 공격성에 대한 뇌의 작동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고 이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치료제도 존재한다. 반면 주도적 공격성의 극단인 사이코패스 성향은 뇌과학적 해석이 아직 미미하고 이를 고칠 약도 없다. 이들 개인의 범죄는 당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들이 권력을 잡아 사유화하면 그 해악의 규모는 역사가 말해준다.

 

랭엄은 “천성은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는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의 대사를 인용하며 “(인류가 마주한) 어려운 도전은 조직적 폭력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이코패스 성향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들 소식만으로도 이렇게 심란한데 이들이 판을 벌여 한국전쟁 같은 비극이 이 땅에 재현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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